글기념일(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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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비척비척 걷는 사람을 태우고 가위처럼 걷는 사람을 태우고 버스가 달린다 어디 나라로 갈까요 일단 국경부터 넘어요 모퉁이에서는 천천히 가요 조용히 달려요 버스가 멀리 간다 아무도 태우지 않고 멀리 ... 아픈 사람이 하나 둘 내리고 마침내 내가 기대하던 빚을 졌을 때 버스는 환호했다. 그래요 당신 잘 했어요. 나는 그러라고 있는 거예요. 버스는 다시 (2021.10.18)
2023.03.23 -
22년 1월 18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가 찾아갔을 때 선생님께서 얇은 티셔츠를 입고 계셨는데, 어느새 이리도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네요. 선생님! 저는 오늘 이직할 곳에 가서 면접을 보고, 합격전화를 받았어요. 이렇게 한줄로 정리하면, 누구에게나 가끔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좋은 소식같지만, 그리 평범한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는요.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곳에서는 폭력적인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요. 폭력이 일어난다고 눈치채기도 어렵게, 이것은 조직의 바닥에 스멀스멀 깔려있는 '문화'이지요. 이 곳에서 기관장에게 저는 여러 가지 일을 겪었어요. 아, 사람이 이렇게도 추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한편으론 저의 자존감을 지키느라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고갈될 지경이었죠. 간신히..
2022.01.18 -
굴곡에게 이름을
다르게 생각해볼까. 오늘 "아줌마 같다" 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왜 그 단어에 기분이 나빴을까. 나이든 여성같다는 말. 그 말은 무슨 이미지를 담고 있길래. (중략) 이제 내가 사랑하는 아줌마들을 들려줄까. 단지 저항하고 싶어서가 아냐. 내 사랑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모욕당하는 걸 참을 수 있다면 어찌 사랑이라 하겠어. 일단 평생의 사랑인 엄마. 그녀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친다. 사실상 학문이 아니라 용기를 가르친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냐,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도 돼, 선생님이랑 함께 해보자. 문제를 틀렸다고 자기 머리를 쥐어뜯는 아이들에게 말하곤 하지. 집에 오면 똑같이 자기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다음은 나의 요즘 사랑인 H. H는 경계가 없다. 자기 정체성도 타인의 그것도 쉽..
2022.01.12 -
[직장과 예술] 자문
어제는 드라마 현장에서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정규직 신입 pd였던 이한빛은, 과로와 고압적인 문화,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 사람이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껴 자살을 선택하였다. 그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람이었는데, 부당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가 계약금을 환수해오는 등의 업무를 하면서 참을 수 없는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이것은 2017년에 일어난 일이고 그 방송국은 cj의 자회사인 tvn이다. 그리고 핸드폰을 끄려는데 어제자 뉴스로 현대차의 디자이너가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는 소식이 떴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으나, 이렇게 사람들은 죽어가는구나, 했다. 이곳에서 '일'이 갖는 의미란 무엇일까. 우리..
2022.01.12 -
[직장과 예술] 어떤 이야기
직장은 계속 다니고 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그 중에서 불합리하고 부정한 일들이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온 힘으로 막고 있어서, 직장에서의 사건들에 대해 쓸 기운이 없다. 내가 겪는 크고 작은.. 일들도 있지만, 타인이 겪는 일을 목격하는 것이 더 많다. 어쩌면 배부른 소리겠다. 아직 '피해자'가 되지 않은 사람이 '타인의 피해'를 보고 하는 배부른 소리. 그러나 피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술 활동은 재미있게 하고 있다. 지금 만들고 있는 일인극 은 다원예술? 다원예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멋대로 만들고 있다. 직장 동료도 음악에 참여하기로 했다. 내 이야기를 욕심 없이 풀어낸 작품이라 그런지, 연기도 어렵지 않게 나오고..
2021.08.13 -
[직장과 예술] 돌이킬 수 없는
정희진 선생님을 만났다. 이틀 동안의 만남이었는데, 내게는 너무 큰 사건이어서, 어제와 오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큰 사건... 큰 사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분명한 건 내가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세계를 만났고, 그 세계가 너무 거대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마음이 아플 만큼 아름다워서, 놀란 채 집으로 돌아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해 주신 많은 말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말의 힘이란 얼마나 강한가를 난생 처음 느낀다. 그 말들은 나를 웃게도, 울게도, 화나게도, 아프게도 한다. 그것들을 곱씹으며, 나는 어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세상에 대한 절망에 울적한 채 말이다. 울적한 내게 K는 '살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 말했다. 어떻게..
2021.06.08